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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번치 - 길들여 지지 않은 자들의 폭력 ‘와일드(wild)’란 말은 보통 인간에 의해 길들여 지지 않은 동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우리 말로는 ‘야생’이란 말로 번역되지만 단어가 좀 문어체처럼 들려서인지 ‘야생마’를 제외하고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친근하게 ‘들’이나 ‘산’자를 붙이는 경우가 더 많다. ‘들고양이’, ‘들개’, ‘산토끼’, ‘산양’ 등과 같이 이 ‘와일드’란 수식어가 가축화 되지 않은, 길들여 지지 않은 동물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인간’에 대해서도 문명이나 사회 규범에 익숙치 않은 기질 또는 부류를 지칭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와일드 번치’에 등장하는 패잔병 강도단이 바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다. 제도나 법률 또는 관습이라는 체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법이든 관습이든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공.. 2020. 12. 19.
서부 개척시대의 민낯을 드러냄 - 솔저 블루 이 영화는 예전에 '주말의 명화' 아니면 '토요명화'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TV 방영이다 보니 당연히 잔인한 장면은 모두 삭제되었고 그냥 기병대가 인디언을 학살한다는 내용만 전달했던 것 같다. 나중에 무삭제판을 보게 됐는데 마지막 학살 장면은 감독이 이 영화를 작정하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참상을 표현했고 자비 없이 묘사했다. 스토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 역사에서 '샌드 크리크 학살'이란 이름으로 어두운 단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구글에서 '샌드 크리크'라고만 검색해도 '학살'에 대한 내용이 줄줄이 나온다. 이 학살 사건의 배경은 콜로라도인데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의 배경도 콜로라도다. 이게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된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샤이닝.. 2020. 3. 25.
악인의 처참한 말로 - 탈혼령(1968) 빼앗을 탈(奪), 넋 혼(魂), 방울 령(鈴)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방울이 달린 팔찌에서 따왔다. 이 방울이 울리면 악당이 한놈씩 죽어 나간다. 3인의 악당 의형제 중 둘째에 해당하는 장발의 주먹코, 극중의 이름은 ‘천라검 엄천벽’이다. 중국 무협영화사에 수많은 악당들이 주인공의 칼날에 도륙되었지만 이 배우만큼 처참한 표정과 비명으로 그 죽음을 실감나게 연기한 인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 악당의 마지막 비명은 섬뜩할 정도로 처참하며 남다른 농도를 가지고 있다. 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칼질 당한 고통만을 담고 있는게 아니라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 잔인하게 살해한 희생자들에 대한 가책,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가 담겨 있다. 사실 둘째 악당의 죽음이 너무도 강렬해서 가려지긴 했지만 .. 2020. 3. 14.
흑인을 공격하도록 훈련된 개 - 마견(White Dog, 1982) 스스로의 판단이 아니라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윤리나 이념, 사상이 우리에겐 없는지 고민해 보게 된다. 원제는 White Dog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마견’으로 소개되었다.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이고 하얀색(White)이 한 진영(하얀 피부색)을 상징한다는 면에서 ‘백견’이 나을 뻔 했지만 주목을 끄는 이름으로는 ‘마견’이 선택된 것 같다. 매우 독특한 소재를 다룬 영화인데 이 마견(White Dog)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 것인지 아니면 원작자의 상상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독일 셰퍼트는 흑인을 보면 공격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발상 자체가 충격적이고 극중 이 훈련을 시킨 사람이 스킨헤드나 KKK가 아닌 평범한 중년의 노신사라는 점도 놀랍다. 개라고 하는 동물이 워낙 주인에게 복종하는 성향이 강해.. 2020. 3. 14.
쓸쓸한 겨울 계곡, 장엄한 도입부 - 명월도설야섬구 영화 도입부에 비장한 배경음악과 처절한 과거 학살 씬, 비통함과 복수심을 가슴에 품고 눈 덮힌 계곡을 외로이 걸어가는 적룡의 쓸쓸한 모습 이 장면은 왠지 남자답고 장렬해서 내 기억속에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은 가볍고 코믹한 터치가 이어진다. 당시 홍콩 무협 영화가 그렇듯이 스토리는 꼬임과 꼬임이 반복되고 반전이 난무해서 어지럽다가 결국 무슨 내용인지 기억 나지 않는다. 오프닝의 적룡 등장씬을 중점적으로 감상하도록 하자 2020. 3. 14.
삶의 열정에 의문을 제기함 - 죽음과 매장(Dead & Buried, 1981) "나는 시체예요. 나를 묻어줘요." 재닛의 이 대사와 스스로 자신을 묻는 장면은 진정한 삶의 의미 없이 심어준 대로, 이입된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된 삶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폭력과 광기가 아닌 인간이 추구해야할 삶에 대한 진지하고 도전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영화 사람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 되지만 그 시체가 실종된 뒤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 평범한 일상에 편입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연상케하는 장의사 돕스의 손에 의해 되살아난 사람들 사체에 탐닉하는 사이코틱한 의사 출신 장의사에게 삶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창조주인 돕스가 프로그래밍한대로 살아간다. 평범한 모습이지만 돕스의 이상대로 살아가는 좀비에 지나지 않는다. 자율의지를 박탈당하고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에게 결여.. 2020.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