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판단이 아니라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윤리나 이념, 사상이 우리에겐 없는지 고민해 보게 된다.
원제는 White Dog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마견’으로 소개되었다.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이고 하얀색(White)이 한 진영(하얀 피부색)을 상징한다는 면에서 ‘백견’이 나을 뻔 했지만 주목을 끄는 이름으로는 ‘마견’이 선택된 것 같다.
매우 독특한 소재를 다룬 영화인데 이 마견(White Dog)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 것인지 아니면 원작자의 상상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독일 셰퍼트는 흑인을 보면 공격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발상 자체가 충격적이고 극중 이 훈련을 시킨 사람이 스킨헤드나 KKK가 아닌 평범한 중년의 노신사라는 점도 놀랍다.
개라고 하는 동물이 워낙 주인에게 복종하는 성향이 강해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훈련 받은 대로 공격을 감행하게 되는데 대형견이다 보니 피해자는 목숨까지 잃게 된다.
개도 타고난 본능이 있고 본능 중에는 살육이나 공격에 대한 것도 있겠지만 측인지심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공격한다면 나름대로의 이유나 명분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주거지를 침입하거나 식구를 공격하는 등의 위협적인 가해가 이뤄졌을 때, 이럴 때를 제외하고는 공격하지 않는 것이 개의 본능이자 행동 기준일 것이다.
개라고 해서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물어 죽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서 단지 훈련에 의해 사람을 물어 죽일 때 개의 심리상태는 어떠할까? 자신의 행동에 대해 거부감이나 당혹스러움은 없을까?
영화 속에서 개는 훈련 받은 대로 그저 자신이 해야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흑인을 참혹하게 물어죽임에 있어 조금의 망설임이나 혼란스러움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두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강요된 폭력을 감행할 때의 단호함. 자기 부정이나 의심이 느껴지지 않는 확신이 혹시 개가 아닌 인간에게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개에게 있어 주인에 해당되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경외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어떤 존재, 그 존재는 정치적 또는 종교적 지도자일수도 있고 오래된 관습이나 이념일 수도 있다. 이런 존재가 부덕한 사상을 주입한다면 그것이 비록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라 해도 거역하기 어려울 지 모른다. 더욱이 주변의 다수가 저항 없이 따르는 흐름이 형성되어 있다면 나 또한 거부와 거역의 의지를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의 주관적 판단에 대한 신념과 단단한 의지 없이 거역할 수 없는 환경에 굴복하고 익숙해져 버리는 모습은 비단 영화 속 마견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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