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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걸작들

집단적 광기 속에 숨어있는 저열함 - 옥스보우 인서던트

by 유래유거 2014. 10. 8.

이미지 출처 : britannica.com

적의와 광기, 살인에 대한 욕구로 가득찬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1886년 네바다의 농장마을

킨케드라고 하는 마을 주민이 도둑들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가축들은 도난 당했다. 흥분한 마을 남자들이 자경단을 결성하여 추격에 나서는데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술주정뱅이는 도둑을 목 매달 생각에 신이 나 있고 피해자의 친구는 복수심에 불 타 이성을 상실했다. 자경단 리더인 테트리 시장은 이 사적인 징계가 정당한가 따위는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심약한 아들에게 악행을 가르칠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 가엾은 도둑들은 잔혹한 경험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분별 있는 사람들이 법적 절차를 강변해 보지만 인간사냥에 들떠 있는 주민들에겐 성가신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때마침 부재 중이던 보안관대신 뱃지를 달고 있던 보안관 대리는 주민들에게 공권력을 부여하는 월권을 저지른다. 공식적으로 법의 집행자가 되었다고 믿는 자경단원들은 검거에서부터 처형까지 이제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누가 봐도 피에 굶주린 살인마들인데 정의구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이 기만적인 확신범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며 악인에 대한 징계와 피해자에 대한 응보를 이루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명분을 기반으로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신념이 확고해 지니 명분의 진위 따위는 관심이 멀어진다. 

무슨 짓을 해도 거리낄 것이 없게된 이들에게 지상 최대의 과제는 최대한 빨리 이 가엾은 남자들을 붙잡아 목을 매다는 것이다.

용의자들을 체포한 후 즉결 처형을 집행하려 할때 테트리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집행 여부를 다수결에 부친다. 나중에라도 자신만의 독단적인 결단이 아니었슴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다수결은 찬성파에게도 빠져나갈 구멍을 제공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큰 과오라 해도 내가 아닌 우리의 결정이고 책임이 분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7명의 반대, 나머지 모두의 찬성 

반대가 과반수가 안 되므로 집행을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에 민주적 절차의 무용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의라는 허명 아래 추악한 목적으로 모여든 집단

가엾은 희생양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즐기며 바라보는 새디스트일뿐이다.

반대파에 있던 노인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기지를 발휘한다. 도둑으로 하여금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게한 것이다. 이 정직하고 성실한 남성이 쓴 편지는 눈물 겹도록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 노인은 모두가 이글을 읽음으로써 도둑이 잔혹하고 야비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하려던 것이다. 이런 의도를 모른 도둑은 억울한 죽음을 앞두고 개인적인 편지까지 돌려보며 조롱해야 하냐고 강력히 비난한다.

결국 도둑들은 교수형에 처해 졌다. 소수인 반대파의 노력이 좌절되고 만 것이다.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일행은 급히 자경단을 쫓아온 보안관과 조우하게 된다. 보안관은 모두가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한다. 킨케드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중일 뿐 사망하지 않았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킨케드를 공격하고 소를 훔쳐간 실제 도둑들이 모두 잡혔다는 것이다.

진범들이 잡혀있다면 나무에 매달려 있는 세 주검은 누구란 말인가? 셋 중 누구도 죄를 시안하지 않았고 자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그토록 서둘러 목을 매달아야 했단 말인가? 왜 그토록 기독교적인 자비심을 발휘하지 못 하고 법집행을 서둘렀단 말인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집단적 광기는 우리가 살면서 부딪혀야할 위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력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아니라 여럿이 집단을 이뤄 가하는 폭력은 그 죄책감이 1/n로 줄어든다. 그래서 구성원의 숫자가 많을 수록 더 서슴없어지고 더 잔인해 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집단이 사회정의를 목적으로 하고 법 집행이란 명분으로 무장한다면 그 폭력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마저도 동반하지 않게 된다.

자경단을 이끌었던 테트리는 끝까지 신념을 지킨 아들의 비난과 저주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권성징악이 이 영화의 결말을 장식하지는 못 한다. 나머지 가해자들은 주인공이 읽어주는 도둑의 편지 내용을 들으며 가책의 표정을 지을 뿐 처벌을 받지는 않은 것이다. 뒤늦은 후회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잠시 불편한 심정을 느낄 뿐 그들은 이전의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일을 기억 속에 묻어둘 것이다.

이 섬득하고 무서운 이야기는 주인공이 과부가 되버린 희생자의 아내와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떠나면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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